3년 전 11월 7일, 한 경찰관의 아슬아슬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은 경찰 관계자 혹은 그 외의 극소수. 아슬아슬하게 관람차 문을 열어 폭탄이 터지기 직전에 나왔지만 부상은 피할 수 없었던 거죠.
모처럼 얻은 휴가 상체에 붕대를 감은 채 병상에 누워 있는 마츠다 진페이. 저의 생존이 실감 나지 않는 것인지 오른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던 중 열리는 병실 문. 그리고 들어오는 단정한 복장과 어울리지 않은 파리한 낯의 여자.
예상치 못한 문병객에 찌푸려지는 미간도 잠시 오랜만에 보는 여전히 그리운 얼굴을 본 마츠다 진페이의 속내는 아마 기뻐했을 걸⋯
이로 아랫입술을 짓이긴 아야노코지 마리는 제법 보기 드문 표정을 하고 있겠네. 곧장 병상으로 다가가 마츠다 진페이를 꽉 껴안는 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 따위 보이기 싫으니까. 우냐는 물음에는 애써 부정하지만 토해 내는 서러운 숨에 담긴 진심을 이 남자가 모를리가.
묵혀 둔 감정 녹은 가쁜 숨이 잦아들 즈음 들리는 조그마한 음성 제가 원하는 답이 안 나온 데서부터 짜증이 난 아야노코지 마리와 그 환자 제법 유치한 대화나 나눌 듯
다시는 그런 무모한 짓 하지 마
^^
대답 왜 안 해?
그나저나 누가 알려준 거야? 하여간 인간들⋯
말 돌리지 마 ㅡㅡ
히메 아직 나 좋아해?
공중전화 수화기 너머의 오랜만에 듣는 잔잔한 음성 주말에 잠시 볼 수 있냐는 기꺼운 물음에 입꼬리가 올라간 건 아마 무의식의 침투 마츠다 진페이가 아야노코지 마리를 향해 내보인 진심
⋯
분명 기숙사 방을 나선 건 혼자였는데 뒤에서 티 나게 조심스레 따라오는 그림자에 못 말리겠다며 어깨를 으쓱이니 머쓱한 행동으로 나란히 걷는 네 명 공원에 다다르자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웬 여자에게로 향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색한 거죠
쟤, 우리가 아는 그 마츠다 진페이가 맞아?
저 사람은 누군지 알아?
아니, 마츠다 진페이한테 여자친구가 있다는 말은 없었잖아.
어디서 많이 봤는데⋯. 아, 마리 히메네.
하기와라 켄지 입에서 나온 처음 듣는 이름에 더욱 짙어지는 궁금해 죽겠는 낯 한창 호기심이 왕성할 나이 (ㅋㅋ) 스물둘의 청년들은 다 보이게 숨어 구경하고 있겠죠 그 네 명과 눈이 마주치자 이리 오라며 손짓하는 마츠다 진페이를 보면 묘령의 여인에게 살갑게 웃던 게 허상은 아니었음을
오랜만이네 마리 히메.
하기와라를 선두로 다가오는 네 남자에 고갯짓으로 인사 후 누군지 소개해 달라며 마츠다의 옷깃을 잡아당기는 건 언제 적 습관인지 모를 아야노코지의 어색함에 상응하는 행동 눈을 빛내며 향하는 호기심에 답하는 건 고상한 경어 한결 편해졌다는 걸 나타내는 아야노코지의 은은한 미소에 마츠다의 심연에서 양립하는 질투와 안도
오늘따라 저 미소가 보기 싫은 건 무의식에 일렁이는 사랑임을 소년이 알 리가
이유 모를 불편한 심기, 다시 찾아온 소년의 사랑에 서투른 낯을 가장 먼저 알아챈 건 소년 본인이 아닌 하기와라 켄지 능숙하게 대화의 주제를 돌리지만 아직 궁금한 게 많은 이들의 시선은 한 사람에게로 돌아오겠지
자리를 파한 후 근처 택시 승강장까지 바래다주는 길, 집중된 이목이 불편하지는 않았는지 묻는 마츠다 진페이에 오히려 재미있었다며 웃음을 보이는 아야노코지 마리
아야노코지 마리에게 두 번째 단추는 그저 졸업식 문화 중 하나에 불과했을 터, 그 속에 담긴 뜻까지는 몰랐을 확률 100에 수렴. 사실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지만 ㅋㅋ
고등학교 졸업식 시즌 여학생들은 좋아하는 남학생의 '두 번째 단추' 주제로 들떠있는 상태로 날마다 설렌 상태로 좋아하는 사람의 학창 시절 마지막 주인공이 되길 바라겠구요.
여기서 빠지면 섭섭한 한 남자가 있다면⋯ 역시 화려한 외관에 걸맞은 살가운 태도까지 겸비한 하기와라 켄지가 아닐까 주변에서 하기와라 군의 두 번째 단추 주인공이 벌써 부럽다고 말하니 대관절 왜 부러운지 의문이 생긴 거죠
그게 왜 부러운데?
너 진짜 몰라서 물어?
작년에 검도부 선배한테 단추 받았으면서 그걸 몰라?
마리 너 그쪽으로는⋯ 완전 아니구나?
조심스레 물으니 돌아오는 건 타박과 진실 그제야 알게 된 일본에서 두 번째 단추의 의미
머지않아 맞이한 졸업식 제 손에 가쿠란 두 번째 단추를 쥐여 주는 마츠다 진페이의 행동은 그저 기행으로 여겨질 뿐 단지 다른 대학교로 진학하게 되는 아야노코지 마리에 제 학창 시절 마지막 추억을 건네고 싶었던 건데 그 이유를 입 밖으로 꺼낼 인물이 아니니 두 번째 단추의 의미를 알아 버린 공주가 순순히 받을 리가
이걸 나한테 왜 줘?
몰라서 물어?
너 나 안 좋아하잖아. 그리고 나 이거 필요 없어.
그냥 받아.
싫어. 고이 간직했다가 치쨩한테 주던가.
받아라 vs 내가 왜? 말씨름 끝에 이긴 건 아야노코지 마리 와가마마 공주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 하지만 상대는 마츠다 진페이 ㅋㅋ 이 남자 역시 순순히 물러설 인물은 되지 못하니 주는 것은 포기하고 마리의 세라복 스카프를 가져다 제 졸업장 통에 묶지 않았을까